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마가' 모자를 쓴 채 뉴욕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선호하는 탈출지였던 미국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세력을 등에 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으로 중국인 선택지에서 제외되고 있다.
미국으로 탈출한 중국인이 일본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얼룬(二潤·2차 탈출)’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다. 도쿄에서 중국인 대상 투자 컨설팅을 벌이는 알렉스 하야시 컴패스 캐피털 대표는 FT에 “인기 있었던 싱가포르는 면적이 작고 투자 기회도 적어 선호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가장 좋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안정적 치안에 미·중에 비해 정치적으로도 자유롭다. 한자 생활권이란 이점에 자녀 교육도 잘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도쿄대의 외국인 유학생 5231명 중 중국인은 3545명(67.8%)으로, 2014년(1270명)보다 3배로 늘었다.
원본보기지난 2월 일본에서 출간된『潤日(룬르)―일본으로 대탈출하는 중국인 부유층 추적』 표지. 저널리스트 마쓰토모 다케히로가 1년반 동안 100명 이상의 중국인을 인터뷰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의 엔저 기조는 자산이 있는 중국인에겐 좋은 환경이다.
마쓰토모는 “2010년대 이전 중국인은 큰 자산 없이 유학생 신분 등으로 일본에 온 대신 친중국 성향이었다”며 “룬르 이주자는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선전 등 대도시) 거주자로 상당한 자산을 가지며 시진핑 정권에 애정이 없다”고 말했다.
도쿄에 서점을 운영 중인 중국인 장제핑은 FT에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에선 저녁 식사의 주요 주제가 도쿄나 오사카로 이주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혁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중국인은 항상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나왔다”며 “시골에서 도시, 도시에서 대도시, 대도시에서 미국, 이제 미국에서 일본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이민 절차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500만엔(약 4700만원) 이상의 자본금이나 2인 이상의 상근 직원 중 하나의 요건을 충족한 외국인 사업가에 최대 5년간 가족 동반 체류 자격을 갖는 ‘경영·관리 비자’를 발급해준다.
원본보기 지난 5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거리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그늘도 있다. 사업 이민을 악용해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일본에 오는 중국인이 늘었다. 웨이보 등 중국 SNS에선 “500만엔이면 일본 이주 가능” “회사 설립 대행 서비스” 등의 글이 돌고 있다. 중국인의 대거 이주로 분쿄나 도요스(豊洲) 등 도쿄 주요 지역의 집값이 급등하고, 일본 수도권 관광·휴양 도시 숙박시설의 25% 이상이 중국계 자본에 인수됐다고 닛케이가 전했다.
룬르 현상을 보는 일본인의 심경은 복잡하다. 인구감소와 경기침체로 힘겨운 지방에선 “유령도시보단 차이나타운이 낫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도쿄 등 대도시에선 “중국인 침투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10월부터 경영·관리 비자 발급을 위해 3000만엔(약 2억8000만원) 이상의 자본금을 확보하고 1명 이상의 상근 직원도 고용하는 것으로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류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