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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새해 첫 연주…'유창한 쇼팽·설익은 슈베르트'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리사이틀의 열기가 무르익자 그의 연주도 과감해졌다. 강약의 대비는 더욱 선명해지고 음표 하나하나가 휘몰아치듯 빠르고 강렬하게 표현됐다. 어느 순간 피아니스트는 마치 연극배우가 된 것 같았다. 그의 피아노는 말하기 시작했고, 쇼팽의 발라드 전 4곡이 연주된 공연 후반부는 마치 4막 구성의 '모노드라마'처럼 흥미진진했다.
지난 3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음악애호가들은 숨을 죽인 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공연은 롯데콘서트홀의 개관 이래 가장 높은 유료 티켓 판매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는 객석에도 진지함을 넘어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특히 이번 공연은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쇼팽의 발라드 전곡 등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돼 있어 피아니스트가 지닌 갖가지 개성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음악회의 포문을 연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는 마치 쇼팽의 음악처럼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베르크는 쇤베르크, 베베른과 더불어 20세기 '신빈악파' 작곡가로서 20세기 음악의 혁명을 이끌어간 주역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3인의 작곡가 중 가장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을 보여주며 이는 그의 초기작인 피아노 소나타도 마찬가지다.
조성진은 특히 이 소나타가 지닌 낭만적인 개성에 집중해 첫 주제의 도입부터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터치를 가미하여 일반인에겐 다소 난해한 20세기 음악을 친근하게 풀어냈다. 왼손과 오른손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선율의 흐름을 능숙하게 연결하는 솜씨는 훌륭했다.
그러나 콘서트홀의 음향 특성상 피아노 소리를 또렷하게 듣기가 어려웠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잔향 시간이 길고 반사음이 많은 롯데콘서트홀은 소규모 현악앙상블 연주에선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반면 피아노의 음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느끼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공연 전반부에 연주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9번 D.958의 경우 음 하나하나의 성격을 분명하게 감지하기가 어려웠다.
슈베르트 음악에 대한 조성진의 접근 방식 또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1악장 도입부 제1주제의 경우 리듬의 성격 자체가 단호하기는 하나 처음부터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에는 힘이 많이 들어간 듯했다. 악보 상으로는 처음에 포르테(f·세게)로 시작해 점차 포르티시모(ff·매우 세게)로 나아가야 함에도 처음부터 계속 강한 연주로 일관하여 단조롭고 평면적으로 느껴졌으며 E플랫 장조의 제2주제의 경우 각 악구의 첫 음을 너무 강조해 선율의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또한 느린 2악장에서 단순한 듯 심오한 명상적인 느낌이 잘 살아나지 못했는데, 이는 슈베르트 음악 특유의 '고요하게 머무르는 시간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음악작품의 각 부분을 명확하게 구획해내며 논리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발전시켜나가는 베토벤의 음악과 달리 슈베르트의 경우는 반복되는 음형 자체의 리듬이 정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고 화성 리듬 자체도 매우 느리기 때문에 고요히 머무르는 느낌을 전해준다. 그러나 조성진은 각 부분이 잘 구획된 베토벤의 소나타를 대하듯 슈베르트의 작품의 부분에 집중해 전체적인 흐름을 놓친 듯했다.
반면 공연 후반부에 연주한 쇼팽의 발라드 전 4곡의 연주는 강약의 대비나 템포의 흐름이 다소 과장된 어조로 표현됐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매우 유창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쇼팽의 발라드가 폴란드의 시인 미츠키에비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모르더라도, 조성진의 연주만으로도 쇼팽의 발라드에 담긴 시적인 아이디어와 문학적인 감수성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조성진은 마치 연극배우가 된 듯 쇼팽의 음표들로 말하고 연기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발라드 제4번의 후반부에서 그는 무르익은 표현력을 발휘한 연주로 관객들의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쇼팽의 발라드 전곡 연주가 모두 끝난 후 조성진은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을 위해 드뷔시의 '달빛'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1번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조성진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4일 저녁 8시에 롯데콘서트홀에서 계속된다. 4일 공연에선 쇼팽의 발라드 전곡 대신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전곡이 연주된다.



herena88@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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