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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사업 혈세낭비> "국고 축내는 정치인에 반드시 책임 물어야"
"현미경 검증시스템 구축하고 선심성 공약 남발 막아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잘못된 수요 예측', '선심성 공약', '졸속 추진', '검증시스템 부재'….
수백억~수천억 원의 혈세를 들였음에도 제 역할을 못 하는 대형 국책사업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꼬리표다.
사업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전문가들은 혈세 낭비라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정부뿐 아니라 전문가 집단과 시민단체가 사업 타당성 등을 따지는 검증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국고를 축내게 하는 정치인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효성 논란이 일긴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주민 참여 예산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주민 참여 예산제는 자치단체의 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시키는 것이다.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정부가 국책사업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부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비 3천567억원이 투입된 양양국제공항은 중국과 일본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안고 출발했지만, 이용객 유치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강원도는 운항장려금과 손실보전금으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40억8천만원을 쏟아부었다.
2002년 개항 이후 지난해까지 1천91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와 관련,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양양국제공항의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수요 예측과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이라고 꼬집었다.
배후도시의 잠재적 고객 확보를 위해 교통 편의를 고려하지 못한 잘못도 지적했다.

사업부지가 배추·고구마밭으로 전락한 전북 김제공항도 마찬가지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합 사무처장은 "김제공항은 정확한 수요 예측이나 충분한 타당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주민 여론 수렴과정 없이 졸속 추진돼 엄청난 예산만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처장은 "김제공항 건설은 단순한 지역 성장개발 논리에 밀어붙이기식의 강압적 수단까지 더해져 지역 주민의 실질적 삶의 질이나 재분배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이기주의도 혈세를 낭비하게 하는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호남고속철도 공주역이 대표적인 경우다.
공주역이 '동네 간이역'으로 전락한 가장 큰 원인은 지방자치단체 간 유치경쟁탓이다.
이상선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는 "극단적인 지역 이기주의와 전근대적인 의사결정으로 정책이 집행된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백억 대의 예산을 써놓고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결도로를 새로 만든다거나 확장한다고 해서 접근성이 나아질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라며 "지금으로써는 역사를 살릴 뾰족한 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경인아라뱃길은 검증시스템 부재가 낳은 결과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당시 서울·인천·김포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가 아라뱃길 사업의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수차례 지적했지만 묵살됐다"고 말했다.
그는 "조 단위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전문가 집단과 시민단체가 사업 타당성을 함께 철저히 따져보는 검증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늦게나마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올 1월 예산 낭비나 비리가 우려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실시간 부패 감지시스템을 도입하는 '부패 방지 4대 백신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 대형 국책사업 실시간 감시 ▲ 대규모 자산운용기관의 선제적 리스크 관리 ▲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차단 ▲ 내부통제 장치 강화 등이 핵심 내용이다.
240조원을 운용하는 대형 SOC(사회간접자본) 등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낭비를 감시하기 위한 '내 세금 국민감시단'은 이미 지난해 10월 출범해 활동 중이다.
내 세금 국민감시단은 행정자치부가 부여하는 과제에 따라 예산 낭비사례 자료수집과 현장조사에 참여한다.
자치단체가 예산 낭비 신고 민원을 묵살하지 않고 제대로 처리하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이재준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국책사업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다반사여서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일정 금액 이상의 사업은 가이드라인을 정해 별도위원회를 만들고 타당성 조사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원시의 시민기획단처럼 연령ㆍ계층ㆍ지역별로 참여하는 국민기획단을 만들어 국민의 동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국책·지방사업 국민기획단 조성방안을 제안했다.
(김인유 강종구 임보연 홍인철 이재림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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