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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세이 펴낸 김형경 "아파도 울지 못하는 남자를 위한 글"
심리에세이 '오늘의 남자' 펴내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남자 주인공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여자 시청자들의 속을 터지게 한다.
정환은 덕선을 몇 년째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단짝 친구인 택이가 덕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포기하려고 한다. 택이 역시 친구 정환이 덕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덕선에게 고백하려던 계획을 취소한다.
덕선의 아버지는 부인이 암이 아닐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선 괜찮은 척 웃음을 짓는다. 아들이 탄 비행기가 경로를 이탈했다는 소리를 듣고 혼자 울부짖던 택이 아버지는 아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받는다.
남자들은 왜 이렇게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까. 이런 질문에 해답을 줄 책이 출간됐다. 소설가 김형경이 쓴 '오늘의 남자'(창비)다.
'오늘의 남자'는 김형경이 '남자를 위하여'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남자 에세이다. '다시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란 부제가 붙은 책은 여자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행동과 속내를 파헤친다.


김형경을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자마자 남자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물었다.
김형경은 "현실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남자의 실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했다"며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항상 환상을 요구했고, 변하는 여성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자와 여자는 서로 이해하지 못해 늘 갈등을 겪는다"며 "그 이해를 돕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그가 남성의 심리를 이해하는 게 가능했을까. 책은 이런 의문을 한 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속 시원하게 남자들의 속내를 분석한다. 어떻게 이런 분석이 가능했을까.
"제가 1982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당시 사회는 90% 이상이 남자들이었죠. 저는 제가 적응해야 하는 세상을 이해해야 했고, 결국 그것은 남자를 이해하는 일이었어요. 그때부터 남자의 심리에 관심을 뒀던 거 같아요."
그런지만 여성 소설가가 남자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았다.
김형경은 지난 2012년 한 월간지로부터 남자 심리에세이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흔쾌히 승낙하지 못했다. '잘 못 건드렸다가 날벼락 맞는 거 아니냐?'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남녀 갈등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욕을 먹더라도 한번 써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남자를 위하여'와 '오늘의 남자'다.
"우선 심리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웃음) 그런데 남자나 여자나 마음의 본질은 다르지 않더라고요. 인간 심리는 같은데 세상에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남자나 여자나 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기대, 책임에 맞춰 자신을 표현한 것뿐이에요. 제 책도 그런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책은 '아픈 남자 슬픈 남자'라는 챕터로 시작한다. '아프다', '슬프다'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선 남성에게 잘 쓰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김형경은 "남자들도 사실 내면에서 정말 슬프고 아프다"며 "남자라고 모욕적 일을 안 당하고. 애인에게 버림받지 않겠는가.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병이 난다. 또 다음 관계를 망치게 된다"며 "남자들이 힘들고 슬프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학작품 속의 인물과 작가의 생애, 심리학자들의 연구 등을 적절히 배치하며 남자들의 세상을 파헤친다. 직접 겪은 주변의 사례들도 제시하며 공감대를 선사한다. 이번에는 한 번에 쓱 읽을 수 있는 칼럼 형식을 취했다. 신문에 연재한 글이기도 했지만 남자 독자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첫 책 '남자를 위하여'에 남자들이 읽기에는 아픈 내용이 많았어요. '과연 이 땅에서 내가 살아날 수 있을까?', '남성 사회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남자들의 마음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남자를 위하여 책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 남성 독자들을 위해 짧게 썼죠."
김형경은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세월', '외출'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중견 소설가다. 그는 최근 10년 동안 소설보다는 '사람 풍경', '천개의 공감' 등 심리에세이를 더 자주 펴냈다.
"진짜 제 욕심은 소설이죠.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니 계획한 대로 안 가더라고요. 에세이 청탁이 와서 '지금 시대에는 이런 책이 필요한가 보다'하고 쓰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독자들이 책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지금 내 삶의 시기에서는 이런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에 지금까지 왔네요. 이제 오랫동안 심리에세이를 썼으니 이제 더 쓸 것도 없네요. (웃음)"
그는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때 그 흐름을 타는 것도 괜찮다"고 답을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소설을 쓸 흐름인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올해에는 소설을 포함해 쓰다가 만 것들을 다 정리해야죠. 꼭 내야죠, 소설"


viv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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