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노효동 특파원 = 한반도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워싱턴 정책서클 내부의 관심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양상이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고 현 정부가 1년 남짓한 상황에서 대외정책 현안이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소형화·경량화·대량화로 이어지고 있는 핵관련 사안이 지나칠 정도로 외면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북한이 또다시 도발을 한다면 '반짝 관심'이 모아질 수 있겠지만, 즉자적 대응을 넘어 근본적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정책적 노력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년도 미국의 대내외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내년도 국정연설(1월12일)에서 북핵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보인다는게 소식통들의 관측이다.
복수의 소식통은 14일(현지시간) "내년은 대선의 해여서 국정연설이 국내현안에 초점이 맞춰지고 대외현안을 거론하더라도 이슬람 국가(IS)나 기후변화와 같은 어젠다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 가서 북핵문제를 새롭게 거론할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북핵문제를 언급한 것은 2013년 집권 2기 첫해인 2013년 첫 국정연설에서 바로 직전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거론하며 "핵실험은 북한을 더욱 고립시킬 뿐"이라고 비난한 것이 마지막이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 미사일을 전담하는 '북한 전략군'을 제재하고 무기수출 거래에 관여한 선사들을 수시로 제재하면서 압박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큰 틀에서 북핵문제와 관련돼있지만 이를 정책적 해결 의지를 보였다고 직접 평가하는 힘들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동 등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며 실제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담겨있는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과 경제개발이라는 '병진노선'을 고수하면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굳히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적 목표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주장까지도 나온다.
북핵 문제를 20여년 이상 지켜봐온 한 인사는 "오바마 행정부 정책의 목표는 더이상 비핵화가 아니라고 본다"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속도를 늦추는 게 진짜 목표인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워싱턴 내 논의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싱크탱크들의 정책세미나에서 북핵문제나 6자회담을 주제로 한 논의는 가뭄에 콩나듯 하고 미사일 방어(MD)체계나 한반도 통일, 이란 핵문제을 주제로 한 토론이 늘어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행정부가 비핵화 목표에 소극적인 것처럼 평가하는 것은 오해이자 비약"이라며 "현재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라 뒤로 밀려나있을 뿐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러시아와 꾸준히 협의하며 북한의 태도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가 외면되는 흐름은 차기 행정부 정책을 논의해야할 장(場)인 대선판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나 마르코 루비오 후보가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핵무기를 가진 '미치광이'(maniac, lunatic)라고 표현한 정도가 고작이다. 이란 핵문제와 비교하면 철저히 '차별대우'를 받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인사들 사이에서는 "북핵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것이냐"는 자괴감 섞인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핵 정책을 다뤘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지난주 핵과학자 회보에 글을 올려 "나는 1990년대에 북한 비핵화를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후임자들도 마찬가지로 실패했다"고 밝혔다.
페리 전 장관은 러시아와 중국, 파키스탄, IS와 함께 북한발 핵위기를 '5대 핵악몽'으로 꼽으면서 "북한이 수개월 내에 장거리 미사일이나 추가로 핵실험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페리 전 장관은 이어 "우리는 북핵을 해결하는 길에 있지 않다"며 "북한과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이며, 위험한 상황이 터질 경우 핵무기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고 최악의 핵전쟁 시나리오를 거론했다.
최근 회고록을 펴낸 바 있는 페리 전 장관은 핵과학자인 지그프리트 해커 박사가 제안한 '3 No 원칙'을 거론하며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3 No 원칙은 북한이 핵무기를 더 이상 추가하지 않고 핵무기 성능을 개선하지 않으며 핵무기와 기술 이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2009년부터 5년간 미국 국방장관실 자문역을 지낸 보수성향의 밴 잭슨 신안보센터 객원연구원은 이날 외교전문지인 '디플로매트'에 글을 올려 북한에 대한 '현상유지'(status quo) 정책을 포기하라고 주문했다.
잭슨 연구원은 "역대 대통령은 자신이 넘겨받은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된 한반도 상황을 후임에게 넘겨주며 책임을 떠넘겨왔다"며 "북한은 이제 정책서클 내에서 '다루기 어려운 나라'로 유명하며, 한·미동맹은 핵무장한 북한과의 제한적 전쟁이라는 미래로 달려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잭슨 연구원은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부터 미국의 행정부는 한반도 위기가 닥쳤을 때 유화적 외교를 통해 긴장 완화를 택했다"며 "다양한 형태의 보복책이 국가안보회의(NSC)의 테이블에 올라왔지만,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우발적 전쟁 가능성에 마비됐으며,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 경로를 걸은 이후에는 어떤 미국 대통령도 이를 멈추기 위한 즉각적 위기를 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잭슨 연구원은 "중국에 적용하는 현상유지 정책을 북한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지역 안정과 자유로운 질서유지라는 미국의 목표를 갉아먹는 것"이라며 "이대로 현상유지 정책을 펴고 중국의 대북정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더 극단적 선택이 머지않은 미래에 테이블위로 올라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도성향의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한반도담당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북한 핵무기의 보유규모가 현재 10∼16개에서 2020년께에는 125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북한을 뺀 5개국(한·미·일·중·러)만으로도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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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