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프린트
• 스크랩
• 이전
• 다음

1. 
2. 

'탈북화가' 선무 "고향마을 사람들 배 터지게 먹이고파"
'나는 선무다' 애덤 쇼버그 감독 "마음을 열 때 변화 일어나"

(고양=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고향에 돌아가면 마을 사람들을 한 번쯤은 배가 터지게 먹이고 싶어요. 평양에서 제 작품 전시회를 열고 싶기도 하고요."
'탈북자 출신 화가 1호'인 선무(가명) 씨는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98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해 중국, 라오스, 태국 등을 떠돌다 2002년 한국에 정착했다. 가명인 '선무'(線無)는 휴전선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지었다.
선무 씨는 "북한에서 예술가의 지위는 굉장히 높다"고 소개했다. 남한에서처럼 누구나 택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 그가 어쩌다 탈북하게 됐을까.
"처음부터 탈북할 생각은 없었어요. 두만강까지 동냥질하러 나왔다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감행한 거죠. 중국 땅에 가니 개·돼지도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북한 주민들은 못 먹고 굶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김일성·김정일 앞에 붙는 수식어를 떼는 데 한참이 걸리더라고요. 북한에서 이들은 예수와도 같은 존재예요."
그림 그리는 법을 처음에 배우게 된 계기도 자신이 가진 재주를 가지고 '최고 존엄'의 눈에 들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
"어릴 때 설날만 되면 텔레비전에 김일성이 나와 어린 아이들의 공연을 지켜봐요. '재롱잔치'가 끝나면 김일성이 애들을 격려하고 안아주죠. 그 광경을 보면서 나도 내가 가진 재능으로 저분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칭찬받을 수 있는데…그런 생각에 학교에서 미술을 배웠어요."
북한에서는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당국의 허가 없이 지도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엄금하고 있다.
선무는 북한에 있을 때 남몰래 방문을 걸어 잠그고 김일성의 얼굴을 그린 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아궁이에 넣어 태운 적도 있다.
남한에 정착한 지 13년째지만 신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언제 어디를 가든 모자와 선글라스를 필수품으로 챙긴다.
북한에 남아있는 부모와 형제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외적으로 실명과 얼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선전물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이제 정반대로 자신의 예술을 자유롭게 펼치는 최초의 북한 출신 예술가가 됐다.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선무다'(영제 I AM SUN MU)에서 북한의 현실을 풍자한 그의 작품들이 여럿 소개됐다.
"문화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대단한 힘을 지녔다고 봐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영화에 출연한 것이 아니에요. 예술로 표현의 자유와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날 선무와 동석한 애덤 쇼버그(30) 감독은 "선무라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DMZ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알릴 수 있어 기쁘다"면서 "이번 영화가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데 새 관점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을 다룬 영화를 정치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보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나는 선무다'에서는 정말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요. 저는 미국인이고 남북 관계 전문가도 아니지만, 한반도의 분단은 군사적인 힘이나 국제정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변화는 사람의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redfla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