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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판 '알리바바의 동굴'…"도난당한 보물을 되찾자"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간 문화재 반환 소송이 한창이다.
가장 최근에만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은 얼마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OM)를 방문해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 중인 창녕 출토 유물, 조선왕실 유물, 경주 금관총 유물 등 34점을 한국이 돌려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유물은 애초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1981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됐다. 오구라 컬렉션은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 각지에서 모은 문화재로 도난·도굴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문화재 반환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독일이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왕) 아크나톤의 부인이자 투탕카멘의 이모로,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고대 이집트 3대 미녀로 꼽혔다는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을 이집트에 반환하지 않아 양국이 갈등하고 있으며 그리스가 영국을 상대로 파르테논 신전에서 나온 '엘긴 마블스'를 놓고 반환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또 이탈리아가 미국 캘리포니아 박물관이 소장중인 고대 그리스 청동 조각품인 '파노의 운동선수'를 반환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크림자치공화국)를 상대로 '스키타이 황금'을 비롯해 크림반도에 있던 4개 박물관 소장품 600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진행중이다. 이들 문화재는 해외 순회전시를 위해 201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반출됐다가 지난해 4월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병합되는 바람에 아직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이들 문화재를 반환받기 위해서는 다음 달 8일까지 암스테르담 법원에 정식 고소장을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탐사보도 전문인 월간 '소베르센노 세크레트노'(극비로. 이하 세크레트노) 지난 26일자 인터넷판은 볼셰비키 혁명 후인 1920~1930년대 불법으로 반출된 제정러시아 시절의 보물들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면서 러시아판 '알리바바의 동굴'과 이곳에 소장됐던 보물들의 '비운의 사연'을 소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제정러시아 시절 보물 중 하나가 카를 파베르제의 부활절 달걀이다. 연옥(軟玉)과 금 등을 이용해 만든 세공품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아 현재 개당 수백만 달러 이상 호가한다고 한다.
파베르제는 총 50개의 부활절 달걀을 만들었으며 현재 크렘린궁에 10점, 영국 엘리자베스 2세에게 3점, 미국의 출판 재벌인 포브스 가문에 9점 등 총 42점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포브스 가문이 소유한 달걀 9점을 포함한 파베르제의 작품 180점은 2003년 러시아의 유명 기업인이자 영국과 러시아 합작 석유업체 TNK-BP의 빅토르 벡셀베르크 부회장에게 1억 달러가 넘는 액수에 팔렸다.


어쨌거나 파베르제의 부활절 달걀 50점 중 8점은 여전히 행방불명인 셈이다. 세크레트노는 파베르제의 부활절 달걀들을 비롯한 보물과 귀중품들이 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보다 볼셰비키들이 혁명 후 정권 유지 등을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외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몰래 빼돌린 것도 많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도 장식 미술·보석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크렘린궁내 '무기고'를 관장했던 드미트리 이바노프 당시 무기고 관장이 1920년대 말 보석 절도 누명을 쓰고 자살하기도 했다. 이바노프는 귀중품과 문화재의 해외 매각에 극렬 반대했던 인물로, "나는 무기고의 보석들을 훔치치 않았고 팔지도 않았으며 거래하지도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볼셰비키들은 이바노프가 자살한 바로 다음날 그가 훔쳤다는 귀중품 300점을 무기고에서 빼내 해외 중매인과 수집가들에게 팔았다고 세크레트노는 전했다.
특히 당시 볼셰비키들은 황제와 귀족 등 부르주아들로부터 귀금속과 보석들을 무차별 압수해 '무기고'로 옮기기전 러시아판 '알리바바의 동굴'에 이들을 쌓아뒀지만 체계적인 관리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귀족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로, 1920년대 후반 소련시절 러시아에 환멸을 느끼고 서방에 망명했던 게오르기 솔로몬 당시 무역성 부(副)인민위원(차관)이 후에 자서전에서 소개한 글은 이런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젠가 우리는 나스타신 거리에 있는, 재무성 인민위원회 산하의 한 건물에 갔다. 그곳에는 귀중품들이 바닥과 창밑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고색창연한 은접시들이 정교한 왕관들과 목걸이, 귀고리, 그리고 은과 금으로 만든 담뱃갑 등과 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테두리들을 제거한 보석들로 가득 찬 바구니들도 눈에 띄었다. 황제의 보석들도 그곳에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재고 정리도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물론 건물 안과 밖에는 경비원들이 있었고 관리인도 있었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보석의 양이나 가치에 대해서는 일말의 지식도 없었다"고 썼다.
이런 상황에서 귀중품과 보석들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당시 한 체키스트(반혁명·사보타지·투기 단속 비상위원회 위원)의 부인은 백금 틀에 중앙에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박히고 주변에는 둥근 터키옥과 작은 다이아몬드들로 장식된 실물크기의 국화꽃 브로치를 달고 나타나 "남편에게 선물받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세크레트노는 1920년~1930년대 러시아에서 반출된 보물과 귀중품들에 관한 자료들은 현재도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파베르제 전문가이자 학자인 발렌틴 스쿨라로프는 "꼭 필요한 관련 서류들을 찾기 위해서는 국가보안위원회(KGB. 현 연방보안국)와 재무성의 문서보관소 등을 찾아야 하는데 그곳에 접근한다는 게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카를 구스타포비치 파베르제(1846~1920)
1846년 5월 1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석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에서 귀금속 세공을 익힌 뒤 귀국, 아버지의 공방에서 일하면서 금·은·비취 등 귀금속과 보석을 다루는데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 전통적 디자인을 거부하고 파격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작품들을 만드는 데 전념했다.
최초의 부활절 달걀은 1885년 로마노프 왕조의 알렉산드르 3세가 황후 표도로브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 '암탉 달걀'이다. 로마노프 왕조는 이후 30여년간 파베르제의 부활절 달걀 선물 전통을 이어갔지만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제작이 중단됐다.
파베르제의 공방은 한때 700명 이상의 예술가와 기술자가 일하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고 10만점 이상의 공예품을 제작했다. 파베르제는 1920년 9월 24일 미국 망명 중에 사망했다.
ciw@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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