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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스포츠] 역사상 가장 지루한 오페라?…"사색과 상징의 압도적 무대"

    전시/공연 | 04-21 16:52

    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리뷰


    국립오페라단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 모습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서울) 이용숙 객원기자 = 무대는 초반부터 관객을 압도했다. 거대한 벽면으로 둘러싸인 넓고 깊은 무대 공간은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대비와 찬란한 황금빛 조명으로 눈을 사로잡았다.

    지난 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막을 올린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의 '보리스 고두노프'는 이처럼 일단 관객의 시선을 무대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화려한 대관식으로 마무리되는 프롤로그 20여 분 동안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예술의전당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한 무대 전환의 거의 모든 방식을 시도했다. 무대는 회전하거나 이동하거나 더욱 깊은 곳으로 열렸고, 높은 천장에서는 14개의 거대한 종이 내려와 오케스트라의 종소리를 더욱 실감 나게 해줬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지루한 오페라'라는 혹평과 '가장 러시아적인 음악의 장대한 걸작'이라는 찬사로 평가가 엇갈리는 이 작품을 애당초 한국 무대에 올리기로 한 결정 자체가 모험이었다.

    1874년에 초연된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음악의 현대성이 강한 오페라이다 보니, 역시 이날 공연에서도 음악의 생소함이 초래하는 지루함은 해결하기 어려웠다. 무대 조명이 어두웠던 1막과 2막에서는 졸거나 잠이 든 관객들을 다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 2막을 지배한 러시아의 어둠이 3막 폴란드 장면의 눈부신 흰색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 것은 효과적이었지만, 1, 2막에서 무대가 좀 더 밝았더라면 휴식시간에 집에 가버린 관객들의 수는 분명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에는 상당히 많은 판본이 존재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요즘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추세인 무소르그스키의 초판본 대신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개정 신판(1908년)을 사용했다.

    초판과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초판에 등장하지 않는 폴란드 공작의 딸 마리나와 예수회 사제 란고니의 대화, 가짜 드미트리(그리고리)와 마리나의 대화가 3막에서 상당히 길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음악적으로도 무소르그스키 초판과는 스타일이 달라져 전체적인 통일성을 거스르는 단점이 있지만, 관객들 대부분은 어둡고 무거운 1, 2막 뒤에 드디어 환한 무대, 우아한 음악, 그리고 남녀 주인공의 러브스토리가 등장하자 이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섬세한 디테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선이 굵은 연출이었지만, 다양한 상징을 통해 국가권력 및 종교권력의 억압, 통치자의 조건, 민중의 정체성 등 여러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 생산적인 연출이기도 했다. 특히 포다는 연출뿐 아니라 무대, 의상, 조명, 안무를 모두 맡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통일성 있게 보여줬다.

    러시아가 아직 통일국가로 확립되지 못한 혼란스런 시대에 벽에 도드라지게 새긴 무수한 키릴 문자(러시아 알파벳)는 민중의 기대와 희망을 상징하는 듯했다. 러시아를 복속시키고 가톨릭화 하려는 폴란드의 야심은 화려한 순백의 무대로 표현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예수회(제수이트 교단)의 모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가 무수히 반복되는 3막의 백색 벽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실제로 순백 의상을 걸친 인물들의 등 쪽에는 피가 흐른다) 종교적 규율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드러내려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의 음악적 수준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보리스 고두노프 역의 베이스 미하일 카자코프와 마리나 역의 메조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를 제외한 모든 배역을 한국 성악가들이 맡았지만, 대부분 러시아어 딕션(발음)이 놀라울 정도로 명료했고 성악적으로도 주조역 모두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리 역의 테너 신상근, 슈이스키 공작 역의 테너 서필의 미성과 풍부한 표현력이 특히 돋보였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미 여러 작품을 지휘한 젊은 지휘자 스타니슬라브 코차놉스키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선명하고 투명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스칼라오페라합창단은 신체 움직임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연출에 역동적으로 적응하며 러시아 합창의 깊이를 보여주었고, 무용수들 역시 현대적이고 속도감 있는 안무를 정확한 템포로 소화했다.

    공연은 23일까지.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4/21 15:1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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