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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깊은 부실> 책임자들은 승승장구…피해는 국민 몫
정부·국책은행 수장 등 '영전' 혹은 '수직이동'
전문가들 "당국 중심이 아니라 법원 중심의 회생절차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조선사 부실로 국내 산업계가 휘청이고 있는 가운데 관련 기업을 제때 구조조정하지 못했던 정부와 채권은행의 책임자급 인사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법정관리행에 들어간 STX조선은 지난 2013년 4월 자율협약을 신청하고, 석 달 뒤인 7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자율협약을 개시했다.
당시 이 결정에 관여한 인물은 홍기택 회장과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등 채권은행장과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었다.
그러나 업황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이에 따른 적극적인 구조조정보다는 땜질식 처방만 반복했다. 채권단은 3년간 약 4조5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STX조선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년엔 1천820억원의 손실까지 냈다.
구조조정 책임자들은 이 과정에서 메스를 가하기보다는 눈먼 '세금'만 투입하며 '폭탄돌리기'를 했다. 결국, STX조선은 지난달 27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STX조선 부실의 가장 큰 이유는 저가로 수주한 선박 건조계약인데 자율협약 절차에서는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채무액을 조정하는 정도에 그치다 보니 선수금을 돌려주고 계약을 해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자율협약을 통한 구조조정 없이 조기에 회생 신청을 했더라면 더 빨리 구조조정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은 부실대출로 국민 주머니에서 거액이 빠져나가게 됐지만 당시의 책임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3년 4월 산업은행 회장으로 취임한 홍기택 전 회장은 3년 임기의 만료를 2개월여 앞두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선임됐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당선된 것이다.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은 3년 임기를 마친 후 두 달 만인 작년 4월 농협금융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농협금융은 농협은행, NH투자증권[005940], 농협생명, 농협캐피탈, 농협손해보험, NH저축은행, NH-Amundi자산운용 등 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금융지주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TAFT)의 의장을 맡고 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지난해 국민대 경영대학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현재 기업구조조정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당시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맡으며 STX조선에 적극적으로 실탄을 투입했다.
농협은행은 임 회장이 농협금융 회장 재임 기간(2013.6~2015.2) 약 9천300억원의 추가 자금을 STX조선에 투입했다. 농협은행은 지금까지 수천억 원을 충당금으로 털어냈지만, 여전히 7천억원이 넘는 돈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성동조선과 SPP조선, 대선조선 등 중소형 조선사의 상황도 STX조선과 비슷하다.
이들 조선사는 지난 2010년부터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아왔지만 여전히 부실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의 주채권은행이고 SPP조선의 최대 여신공여기관으로 구조조정에 깊이 관여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속하게 진행돼야 할 구조조정이 하염없이 늦어지고 환부만 더 곪아 갔다.
그러나 책임자가 승승장구하기는 마찬가지다. 김동수 전 수출입은행장은 2010년 임기를 마친 뒤 2011~2013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부실의 그림자는 대형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에도 어른거린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의 은행권 익스포저는 23조원에 달해 STX조선이나 성동조선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치계와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채권단은 작년 10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상황이 악화하자 4조2천억원 추가 지원을 결의했다.
이후 지금까지 채권단은 추가 지원 금액의 76%인 3조2천억을 투입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전체 지원금의 4분의 3을 투입했으나 대우조선해양은 경영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월말 부채비율은 4천351%로, 작년 말(4천265%)보다 오히려 상승했다.
주채권은행과 당국의 눈치만 보던 시중은행들도 상황이 악화하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 건전성 등급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낮추는 추세다. 국민은행은 지난 3월, 신한은행은 이달 1일 각각 등급을 조정했다. 우리은행[000030]도 조만간 등급을 낮출 예정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피아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늦춰주면서 퇴임 후 구조조정 대상 기관에 들어가 '떡고물'을 받아먹는 폐단이 계속되고 있다"며 "금융위가 구조조정에서 손을 떼고 법원 주재하에 채권자와 채무자가 모여서 채무를 조정하는 게 훨씬 신속하고 합리적인 구조조정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독 당국이 구조조정을 하면 전문성이 클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관가와 기업의 유착고리만 형성할 뿐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되지 않고 있다"며 "법원 중심의 회생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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