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서울=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미타사 금보암에서 발견된 금동관음보살좌상. 고려시대 후기에서 조선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과 형태가 매우 흡사하다. 불상의 높이는 35㎝이며, 윤왕좌(輪王坐)를 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불상과 흡사…"보존 완벽한 수작"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려시대 후기에서 조선시대 초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발견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최근 전통사찰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서울 성동구 미타사 금보암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불상을 찾았다고 17일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불상은 높이가 35㎝로, 오른쪽 무릎을 세워서 비스듬히 앉고 무릎 위에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뒤 왼손은 바닥을 짚은 모습의 윤왕좌(輪王坐)를 하고 있다.
윤왕좌를 한 관음보살상은 중국 송·원 시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만들어진 불화와 조각에서 윤왕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가운데에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을 쓰고, 귀에는 원반형의 꽃모양 귀고리를 하고 있다. 또 양쪽 어깨에 천의(天衣)를 두르고,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인 영락(瓔珞)을 전신에 걸친 점이 특징이다.
미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왼쪽)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 [대한불교조계종,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불상을 조사한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전반적인 형태는 티베트 불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영락에 두 가닥의 가느다란 띠가 걸려 있는데, 1443년에 완성된 중국 베이징 법해사의 관음보살좌상 벽화에 이러한 양식이 나타나는 점으로 미뤄 미타사 불상도 15세기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높이가 38.5㎝인 국립중앙박물관 금동관음보살좌상보다 미타사 불상이 조금 작고 무게도 3∼4㎏ 더 가볍지만, 자세나 장식이 쌍둥이처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미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제작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발원문이 사라졌으나, 개금(改金, 불상에 다시 금칠하는 행위) 발원문과 일제강점기 기록이 남아 있다.
미타사 측이 지난 2008년 개금을 하면서 불상 내부에서 발견한 개금 발원문에는 '1852년 미타사에 있는 불상을 개금한 사실을 비구 영선(永善)이 증명한다'고 적혀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봉은사 본말목록재산대장을 보면 미타사에 높이가 각각 36㎝, 45㎝인 금동관음보살좌상 2점이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불상이 그중 하나로 확인됐다.
한편 불상이 발견된 미타사는 조계사의 말사로 888년 창건됐으며, 번성했을 때는 경내 전각이 9동 있었고 암자 8개를 거느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 교수는 "국내에는 윤왕좌 관음보살상이 채 10점이 되지 않는다"면서 "미타사 불상은 손상된 곳 없이 완벽히 보존돼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타사가 서울에 있고 불상 제작기술이 뛰어나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 왕실이 발원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윤왕좌 보살상을 대표하는 당대의 수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미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의 개금 발원문.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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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3/17 08: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