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존 最古 금속활자본 '직지' 복원한 임인호 금속활자장 5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직지 활자 3만자 모두 복원 "이제야 스승님 뵐 면목 생겨…후진양성 힘 쓸터"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5년간 밤잠을 설쳐가며 복원에만 매달렸습니다. 이제야 스승님을 뵐 면목이 생겼습니다" 지난 19일 오전 청주시 금속활자 주조전시관에서 열린 직지 금속활자 복원사업 결과보고회. 국내 최초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 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을 5년 만에 복원하는데 성공,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임인호(54) 금속활자장의 얼굴은 사뭇 상기돼 있었다. 어미가 갓 태어난 새 생명을 어루만지듯 임 활자장은 주석과 구리로 빚어낸 7~10㎏짜리 금속활자판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소감을 묻는 말에 5년의 각고 끝에 누구도 이뤄낼 수 없는 결과물을 건져낸 데 대해 기뻐할 줄 알았던 그의 입에선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직지 상·하권 78장의 글자 3만여 자를 완벽하게 부활시켰다는 자부심 대신 돌아가신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하던 그는 끝내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임 활자장은 "돌아가신 스승님을 이제야 제대로 뵐 면목이 생겼다"며 "금속활자를 복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금속활자장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준 이가 바로 스승 고 오국진 선생이다. 1984년 서각을 배운 뒤 고향인 괴산군 연풍면에 자신의 조각실을 만들고, 홀로 작업하던 임 활자장은 오국진 선생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금속활자와 연을 맺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오국진 선생의 모습에 반한 그는 1997년 제자가 되기를 자청, 본격적인 금속활자 주조 기술을 배웠다. 2008년 스승이 타계하고 나서는 무형문화재 제101호이자 국내 유일의 금속활자장이 돼 금속활자 복원에 매진했다. 국내 금속활자 주조 기술의 명맥을 이어가던 그에게 2011년 엄두조차 못 낼 난제가 등장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전통의 밀랍주조법을 바탕으로 고려시대 금속활자인 직지 복원사업을 청주시로부터 의뢰받은 것이다. 3만여자에 달하는 글자를 황토와 모래, 물 등 천연재료만 이용해 2015년까지 완성해야만 했다. 밀랍은 벌집을 만들려고 꿀벌이 분비하는 물질이다. 이 밀랍을 이용, 글자 본을 붙인 뒤 어미 자를 만든다. 밀랍봉에 어미자를 붙인 뒤 주형(거푸집)을 제작하고 가마에서 가열해 밀랍을 녹인다. 이후 주형 틀에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들고 조판, 인쇄 등을 거치는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마무리되는. 그야말로 대역사(大役事)였다. 문제는 천연재료만 이용하면 활자를 소량으로밖에 생산해 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기존에는 밀랍을 통해 일정기간 동안 만들어 낼 수 있는 활자가 15자 내외였다"며 "복원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대량으로 활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찾아내야 했다"고 그간 겪었던 고충을 설명했다. 임씨는 하루에도 3시간만 자는 고행을 자처하며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밤잠을 설치는 것이 일상이었을 만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결국 대량으로 활자를 주조하는 방법을 터득한 임 활자장은 여세를 몰아 지난해 600여년전 존재했던 금속활자 직지의 글자 3만여자를 모두 완벽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온 정성을 기울여 그가 완성한 활자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했다. 이번에 복원된 프랑스 박물관의 직지 하권에 남아있지 않은 1장까지 복원함으로써, 원본보다 더 높은 완결성을 갖췄다. 그는 직지 활자의 복원 성공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자신의 대를 이을 후계자 양성이다. 그는 "돌아가신 스승님이 그토록 바라셨던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며 "이제는 돌아가신 스승님이 하신 것처럼 터득한 기술을 후대에 온전히 전수하도록 후배 양성에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vodcast@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