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해외 입양인의 대모 정애리 입양인봉사회장
17년간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며 2만5천명 모국 생활 도와
"사후관리가 가장 중요"…입양 작가·국내 작가 교류전 개최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미국,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 15개국으로 보내진 해외 입양인은 모두 22만 명을 헤아린다.
이 가운데 해마다 모국을 찾는 입양인과 그 가족은 2만여 명. 한 번 방문한 사람은 대부분 매년 찾는다. 친부모를 찾으려고, 혹은 찾지 못해도 모국이란 이유로 10년 넘게 체류하는 이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런 이들을 돌보는 데 앞장서면서 '입양인의 대모'로 불리는 여성이 있다.
주인공은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InKAS·인카스)를 이끄는 정애리(55) 회장. 17년간 게스트하우스 운영, 모국 체험 캠프 개설, 장학 사업, 친가족 상봉 통역 서비스, 취업·창업 안내 등을 해오며 입양인 2만 5천여 명의 모국 생활을 도왔다.
인카스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아라아트센터 3층에서 '제2회 인카스 국제교류전' 개막식을 열었다. '국외 입양 작가와 국내 예술작가와의 만남, 추억하다(Reminisce)'라는 주제 아래 15개국 입양 작가 29명과 국내 예술가 33명이 참여했다.
전시장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정 회장은 "인카스의 활동은 한마디로 해외 입양인 '사후관리'"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자신의 뿌리를 찾아서 한국을 방문합니다. 입양인에게 친부모와 모국은 그리움의 대상이기 때문이죠. 모국이 품을 수 없어서 해외로 보냈던 이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잘 적응해 이방인 취급받지 않도록 돕는 일은 사후관리 중에서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대학 졸업 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근무하다 결혼한 그는 10여 년을 전업주부로만 지냈다. 그러던 그가 입양인 돕기에 나서게 된 것은 어느 방송사의 입양인 인터뷰를 보고 나서였다.
"19년 전 해외 입양인의 모국 방문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기자가 입양인에게 '해외 입양에 실패해서 돌아온 것이냐?', '잘사는 양부모를 두고 한국에 온 이유는 뭐냐?'라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사회가 입양인의 존재와 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래서는 입양인들이 모국을 찾을 때마다 상처를 받겠다 싶어서 어떻게 하든 도움을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사실 그는 입양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목포에서 고아를 돌보는 공생원의 설립자다. 공생원은 전라남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보육시설이다. 지금까지 공생원을 통해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만도 3천여 명. 어려서부터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고아원집 딸'로 불렸던 그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마음속의 응어리가 무엇인지를 보고 느끼며 성장했다.
정 회장은 "고아와 입양인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았고 이들을 돕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어려서부터 봐왔기에 남을 위해 사는 건 안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인카스 활동이 삶의 중심이 돼버렸다"면서 "남을 돕는 게 희생과 인내가 아니라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른다"고 활짝 웃었다.
그는 해외 입양인이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속은 외국인이라는 것을 헤아려 모국을 경험하고 배우도록 기다려주는 배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가족을 상봉할 때 봉사회가 통ㆍ번역 서비스를 하다 보니 현장에 함께할 때가 잦습니다. 입양인이 친가족을 만나는 자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처럼 눈물바다가 아닙니다. 어색하기도 하죠. 입양인은 해외에서 자라 거주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내 친부모가 맞는지, 왜 나를 버렸는지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자식을 입양 보낸 친부모는 대부문 못사는 처지가 많은데, 자식이 잘사는 나라로 입양돼 금의환향했다고 생각하죠. 서로 잘 모르다 보니 더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정 회장은 "입양을 바라보는 문화가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한국이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됐듯이 입양에 관해서도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고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입양을 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 사회는 보육원을 당연시하는 반면 선진국에는 입양기관은 있어도 보육원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친부모든 양부모든 가정의 품에서 자라는 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고아 수출국, 잘못된 입양 사례 등이 부각되면서 정부는 입양 숙려제를 도입했고 입양 절차도 강화해 최근에는 보육원 아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아들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우리 사회는 너무 소홀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는 미국 등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선진국이 이민보다 해외 입양을 반기는 이유에 대해 "이민자는 출신국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 사회 구성원으로 완벽하게 동화되기 어렵지만 입양인은 어려서부터 시민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도 난민ㆍ탈북 고아 등 가릴 것 없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정 회장은 입양인이 모국의 혜택만 받는 게 아니라 모국에 기여도 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해지도록 돕기 위해 3년 전부터 국내 저소득층 자녀에게 원어민 영어를 가르쳐주는 '랭귀지 바운드'(Language Bound)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성장한 입양인이 인카스로부터 교통비 등 실비만 받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내년부터는 SH공사가 주선해 임대주택 자녀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국제교류전 첫회에 참가한 덴마크 입양 작가가 현지 아트페어(Art Fair)에 국내 작가를 초청해 해외 전시회도 열렸다"며 "이방인과 경계인으로 살아온 정체성이 묻어나는 입양 작가의 그림을 국내에 소개하고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도 돕기 때문에 일거양득"이라고 전시회의 성과를 소개했다.
정 회장은 21일 서울시 종로구 아벤트리호텔에서 국내 전문직 종사자가 모여 입양인의 취업과 창업에 관해 조언해주는 '멘토링데이'를 열 예정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집을 나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입양인을 위해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 '우리집'에서 살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직접 집 관리도 하고 요리를 하기도 한다.
"가족의 지지를 받고 하는 일인데도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말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오히려 즐겁거든요. 입양인들은 모두 저를 '애리 엄마'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저만큼 자식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누구도 부러울 게 없는 자식 부자랍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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