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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매'와 같이 까다로운 슬픔 길들이기
매혹적 언어로 깊은 상실의 치유 여정 보여준 '메이블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헬렌 맥도널드가 그리는 곱고 매서울 만치 날카로우며 몽환적인 글 속의 세계를 따라가노라면, 내가 두 차례에 걸쳐 2년간 살았던 영국의 산하가 새롭게 다가온다. (중략) 아니, 이 책의 주제 따윈 잊고 그저 헬렌과 메이블을 따라갈 일이다. 케임브리지로 가서 같이 숲과 들판을 거닐고 날다 보면 오래전의 잉글랜드 마을도 만나고 동물들과 사람들도 만난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다시 시작하는 삶이 있다." (옮긴이 공경희)
인문학자이면서 매 사육을 경험한 영국 작가 헬렌 맥도널드가 부친을 상실한 깊은 슬픔을 매 사육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담아낸 '메이블 이야기'(원제 'H is for Hawk')가 민음사 임프린트인 '판미동'을 통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영국의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의 책으로 선정하고, 아마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이미 해외에서는 널리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무언가 다른 대상으로 옮겨갈 때가 있다. 작가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주는 충격과 슬픔이 바로 그랬다.
"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매! 저기 믿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동물이 있었다. 갈라진 부싯돌과 분필 같은 색깔, 등 위로 날렵하게 교차된 날개, 하늘을 향해 치켜든, 볏이 서 있는 검은 얼굴." (50쪽)
매를 사육하고픈 강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매에 대해 가져온 강한 동경과 관심이 작용했을 터.
저자는 스스로 '메이블'이라 명명한 매를 길들이는 순간순간의 장면들과 그 예리한 감응들을 날카로운 묘사의 언어로 포착해냈다.
"그때 무슨 일인가 벌어진다. 내 손이 세게 맞는다. 예상치 못하게 타격이 강해 그 충격이 등뼈를 타고 발가락 끝까지 내려간다. 야구 방망이로 누군가의 손을 내려친다면 아마 이와 비슷할 것이다. 메이블이 장갑에 앉아 큰 줄무늬가 있는 날개로 덮은 채 강렬하게 병아리를 움켜잡고 뜯어낸다. 잘려나간 살점이 황급히 매의 목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178쪽)
어린 메이블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교감의 과정은 저자의 영혼 깊숙한 곳을 점령했던 슬픔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뒤흔든다. 메이블은 그렇게 그에게 상실의 지독한 현실을 일깨운다.
"발톱의 붉은 피가 마르고 굳는다. 시간이 흐른다. 햇의 축복. 바람이 엉겅퀴 줄기를 흔들다 잦아든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한다. 소리죽여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꿩 때문에, 매 때문에, 아버지와 그의 인내심 때문에, 울타리 옆에 서서 매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어린 여자애 때문에 운다." (292쪽)
사냥은 이어지고, 저자는 메이블을 통해 스스로 '매'가 되어간다는 몽환적 정서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매와 매잡이 사이의 정서적 일체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수위에 이르지만, 저자는 곧 그 균형이 다시 반대편 쪽으로 기울어감을 느낀다.
인간사회를 등지고 매가 되어 야생에 동화되고 싶다는 생각은 결국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팽팽했던 심리적 긴장의 끈이 풀리면서 헬렌은 깨달음에 이른다.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야생을 택하는 일은 매혹적이지만 성공할 수 없는 허위의 꿈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헬렌은 자신을 되찾는다. 매에게서 남은 상처들은 곧 스스로 생존의 증거이자, 치유 과정의 흔적들임을 깨닫는다.
"나는 매를 내 세계에 데려왔고 그러다가 내가 매의 세계에 사는 체했다. 이제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분리된 채 행복하게 각각의 삶을 공유한다." (431쪽)
'호밀밭의 파수꾼',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 다수 출간물의 번역 이력을 지닌 역자의 번역 또한 저작의 완성도를 높였다.
456쪽. 1만5천원.


jb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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