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과거사 규명 신청 없었다면 국가배상 요구못해"
긴급조치 판단 이어 잇단 보수적 대법 판결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국가의 민간인 학살 행위에 대해 유족이 스스로 진실규명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 현 시점에서는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달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 발령 자체가 불법행위가 아니며 이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하는 등 보수적인 판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정모(67)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씨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정씨의 아버지는 해방 후 '대구 10월 사건' 당시 경찰에 강제연행돼 사살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정씨 측의 규명 신청이 없었음에도 2010년 정씨의 아버지를 민간인 희생자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정씨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은 이 같은 정황상 정씨 아버지가 민간인 희생자로 인정된다며 국가가 정씨에게 1천745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는 정씨의 손해배상 청구 시효가 오래전 소멸했다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해 수십 년 전 사실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국가가 소멸 시효를 주장하지 않고) 손해배상도 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취지"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심과 2심의 이러한 법리가 잘못됐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정씨 측이 과거사위원회에 직접 아버지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았던 만큼 국가가 소멸 시효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정씨의 청구에 대해 시효 소멸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정씨의 아버지가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주문이 아닌 참고자료에만 언급되며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 기록을 찾을 수 없다면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구 10월 사건은 1946년 미군정의 강압적 통치에 저항해 일어난 주민봉기로 당시 7천500여명이 검거됐다.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지역 주민들이 살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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