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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름 강요 사회'…순간 분노 못 참아 살인·방화 속출
"사회 다변화로 스트레스 누적…구조적 해법 모색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시화방조제 토막살인 사건처럼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살인이나 방화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이런 분노·충동범죄가 연발한 데는 인명 경시 풍조와 빠름을 강요하는 속도지상주의 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범사회적인 노력이 전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시대의 속도를 맹목적으로 지향해온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시적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생긴 야만적인 범죄는 최근 빈번해졌고, 범행 장소도 전국에 걸쳐 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최근 10대 청소년이 홧김에 친형을 살해했다. 고교생인 임모(15)군은 지난 1일 오전 2시께 춘천시 후평동의 다세대 주택 2층에서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천륜을 저버렸다.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한 형(17)이 잔소리를 하며 때리자 주방 흉기로 형을 찔러 숨지게 했다.
임군은 경찰 조사에서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후회했다.
부산에서는 60대 남성이 외국인 신부의 입국이 불발된 데 앙심을 품고 건물에 불을 질러 1명이 숨졌다. 최모(63)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50분께 부산시 동구의 한 결혼정보업체 사무실에서 이 업체 대표 이모(75)씨에게 휘발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질러 이씨를 숨지게 한 뒤 도주했다.
엿새 뒤 경찰에 붙잡힌 최씨는 홧김에 방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업체 소개로 베트남에서 만나 결혼식까지 올린 현지 여성이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입국하지 못하자 격분한 나머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난달 17일 경남 진주에서는 3명의 사상자를 낸 '묻지마 살인' 역시 충동적인 범행이었다.
이날 오전 6시 30분께 진주시 강남동의 한 인력공사 사무실 일대서 일용노동자 전모(55)씨가 일감을 찾으러 온 윤모(57)·양모(63)·김모(55)씨 등 3명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윤씨와 양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고 김씨는 어깨 부위에 큰 상처를 입었다.
피해자들과 별다른 원한 관계가 없었음에도 전씨는 2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전남에서는 불우한 처지를 비관하다가 친모가 신생아를 죽이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4시께 김모(33·여)씨는 자택에서 생후 10개월 된 딸이 잠을 자지 않고 보채자 홧김에 수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김씨는 "가정에 소홀한 남편과 살면서 딸을 키우는 현실이 원망스러워 순간적으로 매질을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경기도 양주시에서는 마트 임대차 계약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불을 질러 스스로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김모(50·여)씨는 지난 2월 1일 오후 4시 50분쯤 양주시의 한 마트 사무실로 들어가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방화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불길이 매장 전체로 번져 하마터면 대형 인명피해를 낼 수도 있었다. 이 불로 마트 업주와 점장, 경찰관 1명이 화상을 입었다. 김씨는 임대차 계약 문제로 마트 사장과 언쟁을 벌이다 뜻대로 되지 않자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분노·충동범죄의 원인으로 즉흥적이고 다변화된 사회 분위기를 꼽으며 사회구조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분노와 충동 범죄는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다변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순리적으로 풀어내지 못해 폭발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종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즉흥적이고 빠른 것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외부의 자극을 참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구조적인 대책이나 대안 제시가 쉽지 않지만 사회 분위기 개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현대 디지털시대에 팽배한 속도지상주의가 과연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고 윤택하게 만들었는지를 되돌아보고 인간 존엄을 최우선시하는 공동체 문화를 확산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황봉규·민영규·손상원·이재현·전창해·황정현·이재림·권숙희·손현규·김진방·류수현)
jeon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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