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의 슬로건은 시대변화와 맥을 함께한다. 재도전 후보들은 절치부심하며 단어, 이미지, 정치 색깔 등을 확 바꾸기도 한다.
잘 만든 슬로건은 선거판을 요동치게 하고 '대통령의 꿈'을 이루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대선 재도전에 나서는 정치인에게는 이 한 마디가 큰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1971년 제7대 대선부터 오는 5월 9일 장미대선까지, 슬로건과 선거 포스터를 통해 대권 재도전 후보들의 발자취를 알아봤다.
◇ 시대비판부터 유머감각 녹여낸 슬로건까지
왼쪽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7대, 13대, 14대, 15대 대선 슬로건, 포스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9단으로 불린다. 그만큼 정치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로 통한다. 그는 26년 동안 대통령에 도전했고, 4수 끝에 당선됐다.
1969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연장을 위해 대통령직을 3번 연임할 수 있도록 개헌을 단행했다. 1971년 대선에 처음 도전했던 김 전 대통령은 이를 겨냥, '10년세도 썩은정치 못참겠다 갈아치자!'라는 다소 과격한(?) 슬로건을 내세웠다.
대선에서 패배한 그는 1987년 13대 대선에서는 과거와 사뭇 다른 '대중은 김대중 평민은 평민당'이라는 유머감각이 넘치는 구호를 사용했다. 이후 1992년 14대 대선에서 '이번에는 바꿉시다'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지만 낙선했다.
마지막이라고 다짐했던 1997년 15대 대선. 4수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준비된 대통령'과 '경제를 살립시다!'는 슬로건을 외친 그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포스터 변천사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초반 무표정했던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정치인과 국민 사이의 '소통'이 강조되면서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
왼쪽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제 13대, 14대 대선 슬로건 및 포스터.
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두번의 도전 끝에 대권의 꿈을 이뤘다. 전두환 정권 이후인 1987년 대선에 도전한 그는 '친근한 대통령 정직한 정부 군정종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정권교체라는 국민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결국 표가 분산되면서 노태우 후보에게 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절치부심하며 대선 재도전에 나선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말하며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합류했다.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 후보를 쟁취했다.
5년 만에 얻은 재도전은 '이를 갈았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포스터를 살펴보면 초반 흰 머리는 검은 머리로, 산만하게 배치된 사진과 글자는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15글자였던 슬로건은 5글자인 '新 한국 창조!'로 압축됐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후보를 제치고 당선했다.
◇ 대선 재도전했지만 결국 빈손으로…쓸쓸한 퇴장
왼쪽부터 이회창의 제 15대, 16대, 17대 대선 슬로건 및 포스터.
이회창은 대선에 재도전했지만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대법관 출신이었던 그는 1993년 12월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대법관,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 제1야당 총재. 그는 대통령만 빼고 최고의 자리를 대부분 거머쥐었다.
이회창은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 1997년 대선에 출마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대쪽판사'라 불렸던 그는 평소 신조를 담은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슬로건으로 들고 나왔다. 그러나 준비된 대통령을 강조했던 김대중 후보에게 패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 재도전하면서 이회창은 당명을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엘리트 출신에 강직한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서민과 함께하는 친근한 대통령을 부각하기 위해 서민 행보에도 주력했다. '나라다운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포스터는 반듯한 정면 사진에서 살짝 옆을 보고 웃는 식으로 바뀌었다. 푸른 색상도 흰색 바탕으로 바꿔 자유로움을 강조했다. 이미지 변신을 꾀했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노무현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17대 대선에도 나왔지만, 쓸쓸히 퇴장했다.
◇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 (문재인) vs. '국민이 이긴다'(안철수)
왼쪽부터 문재인 후보의 제18대, 19대 대선 슬로건 및 포스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2012년 18대 대선에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중도 사퇴했던 안철수 후보는 당시에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를 강조했다.
두 후보는 오는 5월 9일 장미대선을 앞두고 대선 슬로건과 공식 포스터를 공개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 들고나온 슬로건은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권자들의 요구 중 하나가 제대로 된 국가 역할 정립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했다. 포스터는 흰색 배경에 환하게 웃는 문 후보의 사진을 기본으로 했다. 포토샵 없이 잔주름과 흰머리를 그대로 표현했다.
안철수 후보의 19대 대선 슬로건 및 포스터.
안철수 후보는 '국민이 이긴다'를 슬로건으로 정했다. 과감한 시도를 한 포스터가 특징이다. 반듯하게 정면을 보는 전통적인 선거 포스터가 아닌, 두 팔을 번쩍 든 현장 사진을 썼다. 그림자를 남겨뒀으며 당명은 기재하지 않았다.
◇데이터로 본 슬로건
슬로건에서 가장 흔한 단어는 무엇일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제13대~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와 제19대 주요 정당 후보자 총 47명 중심으로 알아봤다. 단어 분석 및 워드 크라우딩 이미지 추출에는 서울대 HCI 연구원의 도움을 받았다.
슬로건을 합산한 결과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대한민국(14회)'이었다. '대통령(6회)', '세상(5회)', '정치(4회)', '나라(4회)', '깨끗(3회)', '국민(3회)'이 그 뒤를 이었다. 슬로건이 없는 경우는 3건이었다.
시대에 따라 슬로건에 쓰이는 단어도 변했다. 민주화 물결이 강하던 1987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는 '안정' , '군정종식', '대중'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 14대 대선에서는 '경제', '세계', '깨끗'이 15대 대선에서는 '경제', '젊은' 등의 단어가 주를 이뤘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크던 시기에 치러진 16대 대선은 '나라', '세계' 등의 단어가 눈에 띄었다. 17대 대선은 '경제' '행복' '세상'이 18대 대선은 '준비' '사람'이 등장했다.
올해 열리는 19대 대선은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 탄핵 등 시대 현상을 담은 '나라' '국민' 등이 강조된 점이 특징이다.
junepe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4/19 10: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