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단계 외상·응급센터 채찍보다 보살핌을"
김진방 임채두 기자 = '권역외상·응급센터 지정 취소 검토'
교통사고를 당한 두 살배기 아이가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해 끝내 숨지자 보건복지부가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의료계는 복지부의 이 같은 조처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권역외상센터의 주요 시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외상 소생실, 외상 혈관조영실, 외상 중환자실, 외상 수술실 등. [연합뉴스DB]
김민건(2) 군은 지난달 30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한 건널목에서 외할머니, 누나와 함께 길을 건너다 후진하던 견인차량에 치였다.
급히 전북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수술실이 없어 전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절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병원을 수소문하다 7시간여 만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 시기를 놓친 김 군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과 7일 치료 책임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전남대, 을지대(권역외상센터), 전북대병원(권역응급센터)에서 현지 조사를 마쳤다.
전원을 수용하지 않은 사유가 적절한지 등을 따진 보건당국은 오는 20일 중앙응급의료위원회를 열어 센터 지정 취소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의료계는 김 군 사건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보건당국 방침에 난색을 보였다.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의 치료를 기점으로 2012년부터 세워진 권역외상센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하는 과정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응급의학회 관계자는 "외상센터가 2012년에 도입됐다지만 직원을 채용하고 의료기기를 완전히 갖춰 실제로 운영을 시작한 시기는 2014년으로 봐야 한다"며 "외국에서도 응급의료체계가 자리잡는 데 10년이 넘게 걸리는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고 센터 지정 취소를 거론하는 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수천억원의 응급의료기금을 지원해 외상진료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사업 자체를 문제 있다고 보기에 이른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응급센터와 외상센터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해당 병원들의 문제점보다는 국내 응급의료시스템 전반에 걸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북대병원이 전원 절차를 밟으면서 이용한 수단은 '유선전화'였다.
김 군의 전원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국내 응급의료시스템은 외상센터와 응급센터를 총괄 관리할 '컨트롤타워'가 없다.
전국에는 22개 권역응급의료센터와 9개 권역외상센터(15개 외상센터 중 현재 운영센터 수)가 운영되고 있다.
전북대병원 의료진은 김 군의 전원을 결정하고 중앙응급의료센터를 통해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관리하는 지역은 서울, 경기, 대구, 경북 등 4곳에 한정됐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4개 지역 병원에서 상황실로 환자 이송 요청을 하면 환자 상태에 가장 알맞은 병원을 찾아 안내해 주는 업무를 하고 있다.
4곳을 제외한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는 해당 지역 병원이 자체적으로 이송할 병원을 수소문해야 한다.
더구나 전문의 1명과 간호사, 응급요원으로 구성된 상담요원 2명이 한 달에 130∼160건의 전원 요청을 받는다.
전원 업무를 보는 곳이 부족할 뿐 아니라 밀어닥치는 많은 업무를 맡기에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2005년부터 센터가 환자 전원 업무를 맡아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아직 모든 중증외상환자를 맡기에 부족함이 있다"며 "현재 인력과 개소 수를 늘리는 방법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외상센터가 곳곳에 들어서고 있지만,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가 뒤따라 주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 문제는 해당 병원 3곳에 있다기보다는 각 지역에 설치된 센터를 연결하는 관리 기관의 부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병원에 채찍을 들이대기보다는 부실한 시스템 운영에 대한 손질이 앞서야 하는 이유다.
실제 오는 20일 해당 병원의 지정이 취소된다면, 피해를 보는 쪽은 병원이 아니라 각 지역의 환자들이다.
권역외상센터나 응급센터로 지정된 병원들은 나름 각 지역에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운영상의 어려움에도 센터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DB]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의 '지정폐쇄' 카드는 보여주기식 징계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민과 정부 관계자들이 이제 시작단계에 있는 외상센터나 응급센터에 대해 관용적인 자세를 보여 줘야 건실한 응급의료체계가 뿌리내릴 수 있다"며 "모두 이성을 되찾고 어떤 길이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중증외상진료의 고질적인 문제인 의료수가에 대해서도 새로운 개선책이 필요하다.
현재 외상센터와 응급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은 의료수가에 혜택을 주고 있지만, 손실 부분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중증외상의 경우 세부미세수술, 복합치료 등 보편적인 치료 범위를 벗어나는 치료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의료수가에 대해서도 혜택의 폭을 넓혀 줄 필요가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병원들이 시설 투자비(80억원)를 지원받아 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나서지만, 24시간 운영을 규정으로 삼은 외상, 응급센터 운영이 장기화하면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응급의료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반영한 의료수가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중증외상환자는 일반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생명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지금의 의료수가 체계로는 병원이 장기적으로 센터를 운영해 나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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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0/17 07: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