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리뷰> 시리도록 아름다운 잔혹동화 '렛미인' 긴장감 넘치는 매혹적 이야기, 강렬한 시각효과, 기발하고 미니멀한 연출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스산한 자작나무 숲에 안개가 서리고 몽환적인 음악이 흐르자 시린 기운이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스며들었다. 나무 아래 웅크린 가냘픈 소녀가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로 돌변해 야수의 몸부림으로 포효하며 검붉은 피를 하얀 눈밭에 뿜어내는 순간, 생생한 공포가 전율을 일으켰다. 이달 한국에서 비영어권 최초로 개막한 연극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외로운 십대소년 '오스카'의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매혹적이고도 긴장감 넘치게 풀어낸 작품이다. 뮤지컬 '원스' 등으로 토니상과 올리비에상을 받은 연출가 존 티파니는 환상적인 무대, 기발하면서도 미니멀한 연출, 사실적이고 강렬한 특수효과로 공포와 로맨스가 공존하는 이 작품을 영화처럼 생동감 있고, 그림처럼 탐미적으로 무대 위에 구현해냈다. 연극 '렛미인'은 2008년 스웨덴에서 제작된 영화를 원작으로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초연한 최신작이다. 이번 한국 무대는 원작 연극의 모든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라이선스 공연으로, 오리지널 연극을 연출한 존 티파니를 비롯해 해외 제작진이 방한해 진두지휘했다. 국내에서는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악령에 씐 소녀를 열연, 충무로의 무서운 신인으로 주목받은 박소담의 연극 데뷔작으로 화제가 됐다. 큰 틀에서 뱀파이어의 사랑 이야기지만, 여기에 괴물도 인간도 아닌 비극적 존재 일라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약자 오스카, 평생 일라이에게 헌신하지만 끝내 보답 받지 못하는 인간 사냥꾼 '하칸'과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엮이면서 처절하게 슬프고도 잔인한 잔혹동화 한편을 완성했다. 연극 '렛미인'은 공연시간 2시간 동안 무대예술의 묘미를 다채롭게 드러내며 극이 진행될수록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처음 동화 같은 아름다운 무대는 시선을 사로잡지만, 이내 피가 낭자한 엽기적 살인현장으로 바뀌며 극적 긴장감을 급격히 끌어올린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피'는 이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장치다. 매 장면이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돼 공포영화의 스릴을 맛보게 한다. 특히 인간 '사냥'에 나선 '일라이'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괴수의 정체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장면과 '초대' 없이 인간의 집에 들어갔다가 머리끝에서부터 피가 쏟아지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장면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초인적인 뱀파이어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일라이가 나무 위를 오르거나 상공에서 뒤로 누운 자세로 떨어지는 대목 등도 무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일라이' 역의 박소담은 수백 년을 살았지만, 영원한 십 대의 모습으로 순수한 아이의 내면과 잔인한 짐승의 본성을 동시에 지닌 뱀파이어 소녀를 열연했다. 특히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몸동작 연기로 뱀파이어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대단한 무대장치 없이 조명과 간단한 소품, 기발한 무대전환만으로 숲에서 방으로, 놀이터에서 수영장으로, 집에서 기차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다. 그중에서도 일라이와 오스카의 만남의 장소인 놀이터 '정글짐'이 수영장으로 변하고 실제 물이 가득 찬 수조에 들어간 '오스카'(안승균)가 2분가량 숨을 참는 장면은 객석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하며 긴장감의 정점을 찍는다. 공연은 내달 28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이어진다. 관람료는 3만3천~7만7천원. 문의 ☎ 02-577-1987. kj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