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혜원 기자 = 소설가 정한아(33)는 대학교에 다니던 2005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등단했다.
정씨는 장편소설 '달의 바다'와 '리틀 시카고', 단편집 '나를 위해 웃다' 등에서 특유의 세상에 대한 긍정과 성장의 서사를 보여줬다. 위태롭지만, 그 안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젊음의 이야기로 독자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가 최근 펴낸 소설집 '애니'(문학과지성사)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가족 안에서 무언가를 영영 잃은 사람, 부부 또는 부모 자식 사이에 생긴 상처를 끝내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작가는 단편 8편을 통해 선명히 내보인다.
뼈가 바스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여배우는 그 후로 차가 무서워 아버지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다. 여배우를 도와주는 운전 강사는 아내가 가출한 뒤로 딸과 손녀 뒷바라지만 하며 살고 있다('애니'). 알코올중독인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 가족은 결국 어머니를 홀로 호텔 방에 가둬둔다('그랜드 망상 호텔'). 부모의 이혼을 겪고 외할머니 손에 자란 딸은 거식증을 앓고 치료소에 맡겨진다('오픈하우스').
정씨는 '애니'에 실린 작품을 지난 4년에 걸쳐 썼다. 이 기간에 작가에게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변화가 있었다. 삶과 인간을 긍정하고 아름답게만 보던 그에게 삶의 이면이 보이는 계기였다.
9일 전화로 만난 작가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강요된 여성성 안에 훼손된 여성의 모습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왔다"며 "작품에서는 꼭 가족에 관한 포괄적인 이야기보다는 가족이라는 획일화한 규제 안에 묶인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소설가 정한아 <<ⓒ유혜인>>
결혼과 육아가 그렇게 힘들었냐는 말에는 "그건 아니다"라며 웃었다. 정씨는 "전에 제가 써왔던 어조나 색채에서 많이 바뀌어서 힘든 일을 겪은 게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꼭 힘들기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가 기존에 생각하던 것들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책머리에 쓴 "어머니께"라는 말은 이제 엄마가 된 그의 고민과 깨달음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는 "당장 평일에는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지 않으면 일을 하러 나갈 수 없는데, 저뿐 아니라 많은 여성이 자기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여성의 삶을 희생하는 것 같다"며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감성적인,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타자'로 봤지만 아이를 낳고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등단 10주년을 맞은 정씨는 책 끝 부분 '작가의 말'에는 "문학이 나를 살렸다"고 적었다.
작가는 "문학은 저에게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병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모습임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나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같은 상처를 가지고 같이 훼손돼가는 것을 알려주면서 저를 위로해 줬다"며 "지난 10년을 돌이켜볼 때 제가 문학에 해준 건 없어도 문학이 저에게 해준 건 많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20대 때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고 얼마든지 작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30대가 되니 작가로서 산다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며 "20대에는 굉장한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문학에 임했다면 지금은 작가로서의 의지가 더 중요한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280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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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