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에 스타 작가…끊임없는 '막장' 논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스타 드라마 작가 임성한(55)이 지난 23일 MBC TV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마지막으로 펜을 놓겠다고 세상에 알렸다.
'압구정 백야'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MBC가 그와 차기작을 계약할 뜻이 없음을 방송심의 당국에 밝힌 다음 날 전격적으로 나온 임 작가의 은퇴 발표는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1990년 KBS 2TV '드라마게임' 단막극 '미로에 서서' 편으로 데뷔한 임 작가는 1998년 MBC TV 일일극 '보고 또 보고'를 시작으로 줄곧 흥행작을 내놓으면서 이름을 날렸다.
그럼에도 임 작가는 좀처럼 드라마계에서 걸출한 장인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막장 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청률도 높았지만, 예술성이나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5년 방영된 SBS TV '하늘이시여' 이후에는 그의 작품에 등을 돌리는 시청자들도 조금씩 늘어났다.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과 함께.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아 사실상 '얼굴 없는 작가'였음에도 가장 뜨거운 논란을 몰고 다닌 드라마 작가 임성한의 작품 세계를 훑었다.
◇ '보고 또 보고' 57.3%…스타 작가 탄생
1998년 3월부터 MBC TV에서 방영된 '보고 또 보고'는 일일극 역사상 최고 성적인 57.3%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컴퓨터 강사 출신으로 단막극 몇 편을 쓴 경력이 전부인 임성한도 스타 작가로 올라섰다.
겹사돈 소재와 무리한 연장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보고 또 보고' 재미는 남달랐다는 게 지금도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평가다.
임 작가는 다음 작품인 MBC TV '온달 왕자들'(2000~20001)에서는 각각 다른 어머니를 둔 네 명의 이복 형제가 아버지 죽음 뒤 겪는 세상살이를 담아냈다.
초반에 고전했던 '온달 왕자들'은 KBS 1TV 일일연속극 '좋은걸 어떡해'를 결국 밀어냈고 최고 시청률 38.8%까지 치솟았다.
'보고 또 보고'만큼의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임성한으로서는 작가의 입지를 굳힌 작품이다.
임 작가가 드라마 제작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0년 당시 일간지 기사를 찾아보면 '드라마 내용 전개가 몰상식하다'는 시청자의 지적에 연출자인 조중현 PD가 "비판 의견을 반영하고 싶지만 작가가 대본에 손을 못대게 해 우리도 안타깝다"고 답한 것으로 나온다.
◇ '인어아가씨'로 명성 굳혀
임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 확고히 알린 것은 2002년 MBC TV에서 방영된 '인어아가씨'를 통해서였다.
'인어아가씨'는 불륜으로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게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딸 은아리영(장서희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일극으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와 빠른 이야기 전개, 젊은 배우들의 톡톡 튀는 연기는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 47.9%를 찍을 정도로 흥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글은 기본이고 춤에, 요리에, 노래까지 잘하는 '드라마 작가'로 분한 장서희의 매력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오랜기간 조연에 머물렀던 장서희는 '인어아가씨'로 그해 MBC 연기대상을 거머쥐며 주연 배우로 발돋움했다.
'인어아가씨'는 또한 임 작가에게 '신인배우를 주인공으로 기용해도 대성공시킬 수 있는 작가'라는 평가를 처음으로 받게한 작품이기도 했다.
물론 은아리영이 이복 동생의 연인을 유혹하는 설정이나 인물들의 저속한 대사에 비판이 일었고, 드라마가 총 247부작로 늘어나면서 후반부 이야기를 질질 끄는 데 대한 시청자들의 비난도 상당했다.
◇ 임성한의 '이상한 나라'
논란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 임 작가의 작품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2005년 방영된 SBS TV '하늘이시여'부터였다.
딸을 버린 어머니가 훗날 친딸과 자신의 양아들을 결혼시켜 딸을 며느리로 삼는다는 뒤틀린 가족 관계 설정은 큰 비판을 받았다.
임성한 작품의 무리수는 갈수록 심해졌다.
우리네 풍속이나 관습과 배치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미신 등 드라마 전개와는 무관한 소재를 끼워넣고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황당함을 안겨주는 '급사' 설정 등은 거센 지탄을 받았다.
2013년 봄부터 겨울까지 방영된 MBC TV 일일극 '오로라 공주'는 시청자들을 기함하게 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대기업 일가 고명딸이 누나 셋과 함께 사는 소설가와 펼치는 로맨스를 보여준다던 드라마는 주요 캐릭터였던 개 떡대를 포함해 13개 캐릭터를 이유 없이 줄줄이 하차시켰고 '임성한의 데스노트'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밖에도 현대판 기생을 얘기하면서 눈에서 푸른 빛의 레이저를 쏘고(SBS TV '신기생뎐'), 의붓아들이 난데없이 비명횡사한 상황에서 계모 서은하(이보희)가 방귀를 뀌는(MBC TV '압구정 백야') 식의 비정상적인 전개가 횡행했다.
'인어아가씨' 시절만 해도 분명한 뼈대가 있었던 이야기는 갈수록 개연성을 잃고 '데스노트'와 '레이저쇼'가 화젯거리만 되는 가운데 시청률도 하락했다.
이제는 '임성한의 나라'에서 어떤 이상한 일이 벌어져도 시청자들이 경악하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간간이 시청률 15%만 넘겼을 뿐인 '압구정 백야'의 고전은 '임성한 식 막장'에 대해 시청자들이 느끼는 피로 강도가 심해졌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23일 임성한의 드라마 절필 소식에 환영을 표하는 여론이 많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른 작품을 표절하지 않고, 200회를 넘는 일일극도 거뜬히 완성하는 필력을 가진 임 작가가 이렇게 평가받게 된 데는 MBC를 주도로 시청률에만 몸이 단 방송국 탓도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MBC가 임 작가에게서 단물만 빼먹고 버렸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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