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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는 대가(大家)들의 균형미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살로넨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이 지난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지메르만과 협연으로 공연을 펼쳤다. 뉴욕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은 11년 만이다.

이번 공연은 협연자가 지메르만이란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컸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그는 2009년 고국 폴란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비판한 이후 미국에서 공연하지 않았다. 그가 뉴욕 필하모닉과 연주하는 것은 1996년 이후 29년 만이다.

​지메르만은 완벽주의 성향의 까다로운 연주자로 유명하다. 통상 연주자들이 공연장 내 피아노를 선택하는 것과 달리 자기 피아노나 피아노 부품을 갖고 다닌다. 2003년 예술의전당 공연장 천장에 설치된 마이크를 보고 자신의 연주를 녹음한다고 생각해 이를 떼 달라고 요구한 사건은 그의 이런 성향을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이후 예술의전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내한 공연을 열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것은 22년 만이었다.

지메르만의 이런 성향이 반영돼 이날 공연장 곳곳엔 커튼콜 촬영 금지와 휴대전화를 종료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객석에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지메르만이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악보를 든 채 무대에 등장했다. 협연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살로넨 지휘 뉴욕 필하모닉,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협연

​지메르만의 연주는 치열함을 넘어 대가의 여유가 빛났다. 1악장을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는 이 곡에서 그는 바로 작품에 몰입한 뒤 여린 표현과 센 연주를 오가며 명료하게 소리를 들려줬다. 고음의 여린 연주에서는 천상의 소리를 빚어낸 듯 빛났고 포르테('세게'라는 의미) 연주에선 손이 네 개인 듯 소리가 풍성했다. 때로 연주 사이 공백을 두며 숨 멎을 듯한 침묵의 순간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그사이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기는 여유를 보였다. 아예 몸을 틀어 오케스트라 연주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자유롭게 건반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익숙한 곡에서 멀어졌다. 평소 곡에 관해 치밀하게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치열한 고민 끝에 자유를 얻은 듯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장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나갔다. 오른손과 왼손 연주 모두 명료하게 들려줬고 다른 악기를 뒷받침하며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유지해나갔다.

살로넨도 그런 지메르만을 유의 깊게 지켜보며 합주를 만들어냈다. 흰옷을 입은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은 부드럽고 정갈하게, 때로는 다이내믹한 소리를 들려주며 피아노와 대등하게 곡을 펼쳐나갔다. 지메르만과 뉴욕 필하모닉은 어디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과 절제로 고전주의의 대표 베토벤을 재현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브라보'라는 탄성과 함께 열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관객의 환호에 몇 차례나 무대에 다시 선 지메르만은 앙코르 없이 협연을 마쳤다.

뉴욕 필하모닉은 이어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으로 공연을 이어갔다. '영웅'은 베토벤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위해 만들었다가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 소식을 듣고 실망해 표지를 찢어버린 곡으로 유명하다. 뉴욕 필하모닉의 '영웅'은 베토벤의 이런 불같은 성격을 닮은 격정적인 연주가 인상적인 곡이었다. 살로넨은 때로는 활 움직임을, 때로는 타악기 연주를 연상시키는 팔 동작으로 음들을 끌어모았다. 그는 4악장 피날레에서 주먹을 움켜쥐며 곡을 마무리했다.

살로넨과 뉴욕 필하모닉은 관객의 환호에 앙코르곡으로 바흐의 '당신이 내 곁에 있다면'(Bist du bei mir)과 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중 '피날레'(Finale)을 연주하며 공연을 끝냈다 

류은경 기자.